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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 '귀천(歸天)'



내가 중학생 시절이였나,

그때 이 시를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교과과목으로 접할때는 이 시는 어떤시고, 어떤체로 작성되었고

이 단어의 의미는 어쩌고 였다.

내가 나이가 들어, 이 시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을때, 비로소 이 시인이 얼마나 티없이 순수한 글을 썼는지 

가슴으로 와닿게 되었던 것 같다. 

그의 글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꾸밈없고 과장이 없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단어 하나하나가 빛나는 별 같은데, 그단어들을 천상병의 손으로 모아 시가되니 빛나는 은하수가 된 것 같다. 고 생각했다.



굴곡많고 시련 많았던 천상병의 삶

1930년 일본 출생으로, 해방되던 해 가족을 따라 귀국하여 한국생활을 하였고,

49년 학생시절 월간잡지에 강물 이라는 작품이 실리면서 62년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 때에도 이미 시인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촉망받던 시인 겸 평론가의 삶을 살던 천상병.

그러던 와중,  67년 간첩혐의를 받고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게되었는데 (동백림 사건),

그 이유는 이때 먼저 같은혐의로 잡혀간 대학시절 친구의수첩에서 천상병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섯달동안 자백을 강요받으며 당한 전기고문으로 인해 그는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렇게 그의 비극은 시작되었고, 이때 당한 고문의 충격으로 그는 술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길거리를 돌다아니다 끝내 71년 실종이 되었다.

실종이 되어 생사조차 모르게되는 지경에 이르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과 지인들은 그의 유고집을 출간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알고보니 그는 거리에서 쓰러진채 발견이 되어 청량리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지냈으나, 

본인의 이름과 자신이 시인 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대학친구의 동생인 문옥순의 방문으로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하기에 이르러 72년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으나, 그들은 20여년동안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찻집을 하나 열었고, 문인들이 자주드나드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상병은 늘 술에 쩔어 건강이 성할리 없었고 문순옥의 지극한 간호로 몇년을 더 연명하다 1993년 귀천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1993년 천상병의 진짜 유고집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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