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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낮동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바쁘게 보내고

비교적 한가로운 저녁에 커피 한잔 하면서 오랜만에 뭘 하나 보고 잠이 들까? 하는 맘이 갑자기 들어 영화를 한 편 보기로..

고양이를 키우고나서부터는 고양이 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일단 무조건 클릭하고 보는 나 인지라.. 

제목이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니 안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2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부담 없이 보고 잠이나 자야겠다 했는데, 세상에.. 27분 동안 광광울고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를 켜게 될 줄이야.. 여운이 길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의 감독 사카모토 카즈야 (Sakamoto Kazuya)의 또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해서 찾아봤더니 프로필에는 이 작품 하나만 있었다.

색감도 너무 예뻤고, 담담하게 풀어지는 이야기도 좋았고,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도 좋았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다 좋았다. 꼭 고양이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튼 나랑 히로도 언젠가는 이별을 마주하는 순간이 오겠지?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 지나가던 우리 히로가 내무릎에 챡 하고 앉아 골골대는데.. 휴 

히로 끌어안고 사과만 오백번, 앞으로 더 잘해줘야지 다짐만 오조오억 번 한 것 같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다루의 목소리와 미유의 목소리가 거의 교차식으로 나오는데, 어쩜 이렇게 담담한지...

마지막 엔딩곡은 진짜 가슴이 미어터지는줄. 미유의 시간과 다루의 시간이 겹쳐 나오는데, 미유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다루가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장면만 두 번 나오는데, 너무 미안하고 미안했다.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의 4배가 빠르다고한걸 어디서 봤다. 

우리가 모두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고는 시간이 우리에겐 8시간이라고 하더라고 고양이에겐 32시간이 되는 셈이다.

이틀이 조금 모자라는 시간을 나를 기다리는데 쓴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오늘은 신나게 놀아줘야지 하면서도 막상 내 몸이 피곤하니 고작 몇 번 쓰다듬어주는 게 다인 못된 주인이라 미안해.

에휴 이로써 반성만 오조오억 두 번째네.

사카모토 카즈야 (Sakamoto Kazuya)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흘러가는 시간들

 


"매일 먹는 밥

매일 상냥한 그녀

몸단장을 마친 그녀는 누구보다도 예쁘다.

어깨를 펴고 아침 햇살을 향해 걸어 나간다."


 


어린 그녀는 털도 곱고 참 예쁘다.

하지만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껴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기억나지는 않아.

우리는 모든 걸 기억할 수 없으니까.

기억해두는 건 정말로 정말로 소중한 것뿐.

멀리 있는 건 작고 흐릿하게, 가까이 있는 건 또렷하게 보인다.

추억도 마찬가지다.

옛날 일은 흐릿하게, 방금 전 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랬는데...... 요즘은 옛날 일이 방금 전 일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충분히 길게 살았어.



그녀의 아픔과 고통이 내 심장을 꽉 움켜쥔다

그녀가 누구보다도 애쓰며 산다는 걸 나는 안다

힘이 되어주고 싶다

하지만 내 손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그녀의 향기에 둘러싸여 나는 일생에서 가장 깊은 잠에 빠졌다.

깊고, 길고 평온하고 행복한 잠.

(전철 소리) 나는 이 소리를 매우 동경해왔다.

규칙적이고 강한 소리.

세상을 움직이는 심장이 세상 구석구석으로 힘을 보내는 소리.

나와 그녀가 살았던 방.

나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은 더이상 포개질 수 없지만, 세상은 움직이고 우리는 돌고 또 돈다.

나는 그녀를 찾고 있었다.

길고 긴 여행의 끝에서 분명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내 일생은 행복으로 가득했단다.

하지만 약간 걱정이 남았어.

너는 결코 강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약속을 할게.

꼭 다시 올게.


길고 긴 여행의 끝에서 분명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내 일생은 행복으로 가득했단다. 특히 이 구절이 너무 좋다.


많은 것을 잊어버렸지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녀의 향기

자전축이 소리도 없이 가만히 회전하고 그녀와 나의 체온은 세상 속에서 조용히 열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우리의 열과 내뱉는 숨이 마치 별을 순환하듯이 나도 그녀도 별을 돌아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얀 고양이로 환생이라는 결말은 고양이를 키우다 떠나보낸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진짜 고양이가 주인을 간택한다는 설도 

고양이에게도 떠나보낸 사람에게도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는 엔딩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이 결말을 믿기로 했다.

아홉살 우리히로. 앞으로 더 잘 챙겨주고 사랑해 줄게.

사랑하고 사랑해, 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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